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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텐 마시스의 후기 <성모자> 연구: 북구의 여성적 영성과 입맞춤의 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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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최윤정

Advisor
신준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퀸텐 마시스성모자입맞춤오스트리아의 마가렛여성적 영성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2014. 8. 신준형.
Abstract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까지 안트베르펜(Antwerpen)에서 활동한 화가 퀸텐 마시스(Quinten Massys, c. 1466-1529)가 1520년경 제작한 〈성모자(Virgin and Child)〉 세 점에서는 특이하고 대담한 사랑의 표현이 나타난다. 〈체리의 성모(Madonna of the Cherries)〉(c. 1513-30), 〈옥좌의 성모(Virgin Enthroned)〉(1525), 그리고 〈라티에르 성모(Rattier Madonna)〉(1529), 세 작품에 나타나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모습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다정한 관계를 표현했던 전통적 도상에서 벗어나, 서로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입맞춤의 모티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마시스의 후기 작업들에서 동시대의 종교 미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모자 회화들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마시스의 세 〈성모자〉에서 나타나는 입맞춤의 모티프는 단순히 성모의 다정한 모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며, 그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특성에 동반하는 성적인 암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에서부터 발달해 온 신비주의적 영성의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 학자들은 마시스의 성모자상들에 표현된 입맞춤의 모티프를 전통적으로 아들 예수에 대한 성모의 모성을 나타내는 엘레우사(Eleousa) 도상의 변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마시스의 작품들에서는 아가서의 내용에 충실한 요소들이 중점적으로 나타나며, 아가서에서 기원하는 신랑-신부(Sponsus-Sponsa)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다. 특히 마시스의 후기 성모자상들에서는 전통적인 엘레우사 도상의 표현에 따라 뺨만을 맞대고 있는 동시대의 성모자들과 달리, 아가서(雅歌, Song of Songs
Cantica Canticorum)의 첫 구절인 나에게 입맞춰 주세요(Let him kiss me with the kiss of his mouth)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입맞춤이 화면의 핵심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러므로 마시스가 그린 성모자들의 입맞춤은 그 도상의 기원이 되는 텍스트인 아가서에 대한 동시대의 이해를 통해 접근되어야 하며, 이는 당대 관람자들의 종교 예배적 요구를 반영한다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마시스가 선택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 시기 아가서를 주해한 많은 이들 가운데 마시스의 시대에까지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신학자는 성 베르나르 클레르보(St. Bernard of Clairvaux, c. 1090-1153)이다. 성 베르나르는 『아가서 해제(Sermones super Cantica Canticorum)』(1135-1153)에서 아가서에 등장하는 혼약의 이미지를 신자(信者)의 영혼과 신의 관계로 설명했다. 신을 갈구하는 영혼(아가서 해제 7, II:2
이하 해제)인 아가서 속의 신부는 신랑을 모든 감각으로 보고, 만지고, 맛보며 궁극적으로 그의 얼굴을 진실로 마주하고 신비로운 합일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일의 영성의 핵심에 입맞춤의 모티프가 있었다.
성 베르나르에 따르면 신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난다는 성 삼위일체의 진실을 온전히 경험하고 창조주와 성스러운 합일을 이룬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영혼은 영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 베르나르는 『아가서 해제』에서 이것을 세 단계의 입맞춤으로 형상화되는 명상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신 앞에서 죄를 고해하며 자신을 낮추는 참회의 첫 번째 입맞춤(해제 6, II:6)은 발에의 입맞춤으로, 그리고 신의 가르침에 따라 선행을 행해 온 영혼을 신이 들어올리는 은총은 손에의 입맞춤의 이미지로 이해될 수 있었다.(해제 3, III:5) 그리고 마지막 궁극의 입맞춤은 신의 입을 통한 것(of his mouth)이며, [예수]와 입을 맞추는 자는 … 그와 하나의 영혼이 된다.(해제 3, III:6) 아가서와 성 베르나르의 『아가서 해제』와 같은 신학적 주해들은 마시스의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신랑과 신부의 해석 틀과, 영적인 합일의 궁극적인 형태로써 입맞춤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문헌적 원천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세 아가서의 필사본 삽화에서 나타나는 입맞춤의 모티프들은 마시스의 후기 〈성모자〉들의 시각적 선례가 될 수 있었다. 아가서의 첫 번째 글자를 장식하는 장식 문자들은 대부분 신랑과 신부가 입을 맞추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실제로 마시스가 후기 성모자상들을 구성했던 시기에 그가 활동했던 지역에는 입맞춤을 영적인 은유로 사용한 전통이 확고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년의 마시스는 내적 명상을 통한 영적인 깨달음을 강조했던 카르투시오 수도회(Carthusians)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특히 비슷한 시기 매우 인기가 있었던 마시스와 후스 반 클레브(Joos van Cleve, 1485-1540)의 〈서로 껴안고 있는 세례 요한과 아기 예수(St. John and baby Christ Embracing)〉 작품군에서는 들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대담한 입맞춤의 모티프가 나타났다. 따라서 그는 입맞춤의 모티프가 신과의 영적인 합일을 상징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시스는 〈세례 요한과 아기 예수〉 작품들과 명상의 이상적 모델인 성모를 강조한 카르투시오회의 영성에서 영감을 받아 입맞춤의 모티프를 후기 〈성모자〉들에 의도적으로 적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시스의 〈성모자〉들에서 나타나는 입맞춤의 영성을 이해하고 그에게 성모자의 입맞춤이 표현된 작품들을 주문했을 유력한 주문자로 당시 안트베르펜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메헬렌(Mechelen)의 사보이 궁정(Court of Savoy)의 주인, 오스트리아의 마가렛(Margaret of Austria, Duchess of Savoy, 1480-1530)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마가렛이 주문하고 수집한 작품들을 통해 그녀가 마시스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매우 개인적으로 내면화된 여성적 영성과 성모 신앙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마가렛이 입맞춤의 모티프에 대해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명징한 자료는 사보이 궁정 소장품 목록에서 등장하는 서로 껴안으며 입술에 입맞추고 있는 두 어린 아기를 그린 높은 수준의 그림이다. 기록의 묘사는 앞서 다루었던 후스 반 클레브와 마시스의 작품군에서 나타나는 세례 요한과 아기 예수의 주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만약 기록 속 작품이 후스 반 클레브의 〈세례 요한과 아기 예수〉라면, 마가렛은 작품의 핵심을 전달하는 성모자의 입맞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신부이자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의 이미지는 필리버트(Philibert II the Handsome of Savoy, 1480-1504)의 영원한 신부이자 카를 5세(Charles V, The Holy Roman Emperor, 1500-58)와 조카들을 박애로운 대모로서 보살폈던 마가렛의 정치적 페르소나와 맞닿아 있었으며, 성모의 삶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수단으로 복음에 기반한 명상을 중시했던 아농시아드 수녀회(Annonciades)와 마가렛이 긴밀한 관계도 확인된다. 아농시아드 수녀회의 성모 신앙은 마시스의 성모자들이 보여주는 입맞춤의 상징을 시연하는 존재로 성모를 선택하는 중요한 맥락이 될 수 있다.
또한 마가렛은 입맞춤의 종교적 상징성에 대해서 코르비의 성녀 콜레트(St. Colette of Corbie, 1381-1447)를 통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녀 콜레트가 겪었던 기적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성체를 받은 일화인데 즉, 성녀 콜레트는 남성 수도자를 매개하지 않고서도 여성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마주하며, 명상과 기도를 통해 성체가 상징하는 예수의 몸과 신비주의적인 합일을 이루었다. 성녀 콜레트가 경험한 기적 속 성체 의례는 입이라는 육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의 입맞춤과 의미가 밀접하게 통하는 것이었다.
마시스의 성모자상들은 마가렛의 종교적 영성과 신실한 미망인이라는 정치적 선전에 밀접하게 부합하는 성모의 이미지와 입맞춤의 모티프를 표현하고 있었다. 논의된 〈성모자〉들은 주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적어도 마가렛이 지인들을 위해 주문했거나 사보이 궁정을 통해 그녀의 종교적 영성을 이해하고 이를 공유했던 궁정 여성을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퀸텐 마시스의 후기 〈성모자〉들은 신비주의 전통에서 신랑과 신부의 내러티브를 제공했던 아가서에 대한 당대의 종교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었다. 마시스의 성모자의 '입맞춤'은 명상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신랑과 신부, 혹은 신자와 신적 존재 간의 궁극의 합일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마가렛과 같은 신자들은 신부인 성모를 모델로 하여 명상을 통한 신적 합일을 추구할 수 있었다. 북구의 여성적 영성을 입맞춤의 모티프로 구현한 마시스의 작품들을 통해 일찍이는 중세에서부터 존재했던 아가서의 시각 문화가 어떻게 변용되고 16세기까지도 계승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그의 작품과 관련해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사보이 궁정 문화와의 관계를 재설정해볼 수 있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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