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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공자묘 대중화 정책과 조선 내 공자묘 인식의 변화 - 총독부의 공자묘 개방정책과 그 영향을 중심으로 - : 日帝時代における孔子廟の「大衆化」と孔子廟認識の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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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류미나

Issue Date
2010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Citation
인문논총, Vol.64, pp. 103-130
Keywords
조선총독부공자묘개방대중화신분철폐유교보급朝鮮総督府孔子廟開放大衆化身分撤廃儒教の普及
Abstract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는 서양 제도의 수용과 더불어 유교, 불교, 신도의 교리를 이용한 제 정책들이 단행됐다. 필자는 그 중 유교에 대한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의 '국민통합'을 이루는 논리로 유교의 '충효'사상이 이용됐으며, 1890년에는 이 '충효'사상을 특화한 덕목이 메이지(明治)천황의 '교육칙어'로 반포됨으로써 '국민이 당연히 지녀야 할 도덕'으로 제도화된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일본의 유교 이용은 동시 기 조선왕조에도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의 '통합을 위한 도구로도 사용됐음을 밝혔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의 유교 이용은 일본의 '국민통합'을 위한 유교활용과 다른 방법이 동원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 내 '공자묘'의 개방이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 정부 수립 직후, 에도시대의 공자묘를 개방한 경험을 가졌다. 에도시대의 관학의 상징인 유시마세도(湯島聖堂)가 메이지정부에 의해 교육관청 및 대학들의 설립지로 변모하며, 일반 대중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조선의 '공자묘 개방'은 일본의 그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本稿は、日本帝国主義の植民地政策が前近代時期の文化様式を変形さ
せ、変容した事例を朝鮮の孔子廟をとおして分析したものである。
1911年6月、朝鮮総督府は朝鮮王朝時代の孔子廟を開放し、一般大衆の
「公共の場」として用いた。孔子廟は、朝鮮王朝時代において支配集団で
あった両班・儒林らの専有物であったが、植民地期になってから総督府に
よって「大衆化」され、支配政策の宣伝の場所へと変わっていく。総督府は
この政策を「儒教の普及」と「身分差別撤廃の象徴」であると宣伝し、孔子廟
運営に恩赦金を出した明治天皇をたたえた。
ところで、実際こうして「大衆化」された植民地期朝鮮の孔子廟は一般大
衆のよい「見物」になっていく。また、両班・儒林以外の集団でも孔子廟を
利用するケースが登場した
ISSN
1598-3021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7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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