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s

Detailed Information

아시아주의자의 원상(原像) : 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의 경우 : The Origin of Asianists: The Case of Nakano Seigo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uthor마쓰모토 겐이치-
dc.contributor.author권정희-
dc.date.accessioned2014-06-05T01:56:18Z-
dc.date.available2014-06-05T01:56:18Z-
dc.date.issued2014-02-15-
dc.identifier.citation일본비평, Vol.10, pp. 50-69-
dc.identifier.issn2092-686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92095-
dc.description이 글의 원문은 일본어로 작성되었으며 권정희(도쿄대학 박사/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한일근대문학, 비교문학, 비교문화 전공)가 번역했다.-
dc.description원고의 일부는 『「高級な日本人」の生き方』(新潮社, 1999)에 수록되었던 『아시아주의자의 원상』(アジア主義者の原像)으로, 이를 필자가 가필해 나카노 세이고中( 野正剛)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dc.description.abstract근대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아시아를 해방하려는 사상이었는가, 아니면 구미 제국주의를 모방한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를 침략하면서 구미 열강에 대항하려 한 사상이었는가.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들이 살아간 시대와 그들이 아시아에 대한 어떠한 지식과 체험으로 아시아를 침략한 근대문명의 힘(power)을 인식했는가를 상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아시아주의자인 기타 잇키(北一輝)
2와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 1886~1957),3 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는 모두 우익으로 불리어왔다. 그들은 분명 내셔널리스트였지만 결국 천황교였던 일본 우익을 넘는 존재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좌익과 같은 마르크스교(敎)도 되지 않았고 일본제국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기타 잇키의 경우 주로 중화문명으로부터의 지식과 그가 체험한 중국의 신해혁명(1911) 및 일본 제국주의의 대중국[對華] 21개조의 요구(1915)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 아시아관의 틀이 구축되었다. 기타는 자신의 저서 『지나혁명외사』(支那革命外史, 1916)에서도 표명하는 바와 같이 대영제국의 제국주의를 적으로 간주했지만 민주주의 미국을 적대시한 적은 없었다. 미국은 오히려 일본이 제휴해야 할 상대로 인식했다.
-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dc.title아시아주의자의 원상(原像) : 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의 경우-
dc.title.alternativeThe Origin of Asianists: The Case of Nakano Seigo-
dc.typeSNU Journal-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松本健一-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Matsumoto, Kenichi-
dc.citation.journaltitle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dc.citation.endpage69-
dc.citation.pages50-69-
dc.citation.startpage50-
dc.citation.volume10-
Appears in Collections:
Files in This Item:

Altmetrics

Item View & Download Count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