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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기독교 비판과 세속적 신정론
Nietzsche's Critique of Christianity and Secular Theod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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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정기
Issue Date
2014
Publisher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Citation
종교와 문화, Vol.26, pp. 23-53
Keywords
니체계보학르상티망기독교금욕이상신정론NietzschegenealogyressentimentChristianityascetic idealtheodicy
Abstract
기독교 역사의 본질에 직핍하려 하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지적 양심을 견지하는 문제로 전긍한다. 한 영혼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딜(tolerate)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진리를 무릅쓸(risk) 수 있는가? 나에게 이것이 점점 더 실질적인 가치의 척도가 되고 있다…모든 단계의 지식의 진전은 용기, 즉 자신에 대한 엄격함으로부터 유래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체계화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신하고 회피함을 밝히며 체계에의 의지는 정직의 결여라고 단언한다. 이 말은 체계적 사고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특정한 의지, 즉 전체 지식이 어떻게 작은 일군의 근본적이고 자명한 명제에서 도출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야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근대의 도덕이 지배자의 존재를 감추면서 피지배자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보상(compensation)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음을 폭로한 그는 서양철학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이미 1920년에 베버(Weber)는 우리가 지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상당한 정도까지 막스(Marx)와 니체의 흔적을 안고 있다고 했다. 한편 하버마스(Habermas)가 서구 합리주의의 틀을 논파하고자 한 니체의 비합리주의와 반인본주의는 근대성 담론에 대한 실제적인 도전이며 그의 근대성의 거부는 곧 합리성의 거부라 비판하지만, 사실 니체가 도덕, 이성, 과학 등의 개념들이 허위이며 오류라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그 전제들의 허위를 탐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진리의 존재를 전제한 것으로 그는 결코 이성 자체를 반박하지는 않는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 철학자의 관심은 교리와 제도 속에서 고백된 신앙의 그리스도에 가려진 자유로운 영혼인 역사적 예수의 실천이다. 그는 단지 복음적 실천만이 우리를 신으로 인도하며, 사실 그것이 신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는 건 우리가 기다리는 무엇이 아니며, 거기엔 어제도 모레도 없다…그것은 마음의 체험이며,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고 확언하며 이는 그리스도가 삶으로 보여준 바임을 상기시킨다. 이 글은 이천 년 전 근동(近東) 지방에서 르상티망이란 도덕감정이 감행한 도덕상의 반란, 즉 가치전도를 설명하는 니체의 정치신학적 계보학을 통해 그의 기독교 비판과 세속적 신정론의 적실성을 가늠해 보려 한다. 먼저 2장에서는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경로를 추적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계보학적 방법론과 만성적 무능력과 악의의 특징을 갖는 르상티망이라는 도덕감정의 특질은 무엇이며, 노예도덕이 귀족의 주인도덕과의 어떠한 관계에서 형ㅇ성되고 금욕사제의 등장 이후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알아본다. 그 다음 3장에서는 노예반란으로 나타나는 가치전도, 그리고 노예들이 신정론으로서의 금욕이상의 투쟁과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니체의 설명을 소개하고, 초기 기독교의 형성을 권력의지의 신정론의 탄생과 동일시하는 그의 계보학적 논증을 평가한다. 이어 4장에서는 니체 자신의 신정론, 즉 그가 설파하는 탈신시대의 세속적 구원론의 삶의 철학으로서의 의미를 근대적 적실성의 관점에서 분석해 본다. 즉 니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독교 대중도덕의 패권적인 문화현상을 비판하기 위하여 르상티망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기독교의 신정론, 즉 그 귀납적이고 순응적인 도덕심리학에 의해 자칫하면 내면화된 자기파멸에 이를 수도 있는 르상티망의 다른 가능성, 즉 그 다원성과 긍정성의 잠재력을 설파하는 바 이것이 곧 그의 삶의 긍정의 세속적 신정론임을 밝히고자 한다.
In his historical-psychological diagnosis of the history of the humanity and in an effort to get near the essence of Christianity beyond good and evil, Nietzsche has exposed the falsity of unsubstantiated presumption of truth and its concomitant claims of epistemological approachability to truth, and in turn presented his own genealogical exegesis of the Western moral philosophy. Concerned with elucidating in all truthfulness the reality of would-be truths, he has attempted to reveal those truths fraught with falsities of homogenised histories and contingencies beyond violence, as were exemplified by the occasions of the faith confessed within the frame of dogmas and institutions plundering the practice of historical Jesus as a free spirit. Initially a treacherous social emotion of the inferior underclass, Nietzsche tells us, the moral sentiment of ressentiment has been refurbished into an effective weapon of survival in the course of transvaluation by the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of two millennia or so ago. Nevertheless the theodicy of Christianity as a tool of its will to power has ended up having its men and women tied up weak and powerless and willing more pain, only to foster the will to equality geared to revenge rather than strengthened capability. To get matured through spiritual perseverance, however, they are advised to repudiate the theodicy of this religion of pity and embrace the order of rank. In so doing the ascetic ideal of Christianity constitutes the most realistic, if not the ideal, condition for the best existence, for it leads them to self-overcoming that is none other the affirmation of life and the will to power. Nietzsche observes that for the modern masses armed with the theodicy of asceticism suffering and its derivative ressentiment serve as a stimulant astute enough to protect their existence from constant challenges from within and without and lead them to an affirmation of life. However, contrary to his belief that ressentiment is just an individual disposition of pathology, whether positive or negative, this moral sentiment seems to be rather a modern phenomenon associated with social structure. At all events, the secular theodicy of Nietzsche himself is to desist any transcendental meaning or justification for suffering, and accept it positively, that is the affirmation of life as it is, or amor fati. Then it would follow that amor fati is, for Nietzsche, the archpriest of pious unbelief,a relevant soteriological experimentation for the post-theistic modern era.
ISSN
1976-7900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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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Religious Studies (종교학과)종교와 문화(Religion and Culture)종교와 문화(Religion and Culture) 26/27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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